:: 시황 ::
안영(晏嬰) 코스모스펀드
08-08 12:06






15 년 전 제가 여의도와 강남에서 세 차례에 걸쳐 투자정보 제공과 투자관련 회사에서
경영자를 돕는 역할을 하였지만, 그회사 모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저의 선택은 명확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앞장서는 것입니다.

그 결과 지난 10 년 동안 코스모스는 실수와 잘못이 있었지만
단 한번도 회복 불능한 실패를 한 적이 없습니다.
현재 역시 실수와 현명하지 못한 결정과 선택들이 있지만
그 실수들의 크기를 압도하는 성공의 지속과
그 잘못들을 시정하고 바로잡는 강력한 경영원칙과 시스템관리로 인해
회사는 안정과 고성장 확보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코스모스와 같은 신뢰로 상생의 목표를 제시하면서 
정교한 예측과 분석으로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인 위험을 분별하고   
자신과 수백명의 다른 사람들이 10 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공하도록 돕는 능력을 입증한다면 
저는 앞장서기 보다는 기꺼이 그의 곁에서 돕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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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晏嬰)


                                                          도광순 동방학 연구소장 한양대명예교수

춘추시대, 인간의 양심과 도덕이 극도로 타락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횡행했던 사회를 꼽을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역사의 한 무대다.
이때는 수도를 동쪽으로 옮긴 주(周)나라의 권위가 쇠퇴하고 유력 제후국이
패권을 추구하던 시기(BC 722~403)로 중국 사회는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도 도덕적 양심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제(齊)나라의 재상인 안영(晏영)이다. 그의 덕에 대해서는
공자도 ‘논어’에서 찬양한 바 있다.
안영은 제나라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3대의 군주에 걸쳐
명재상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특히 범용(凡庸)한 군주였던 경공이 58년이나
제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안영의 공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행적은 ‘안자춘추(晏子春秋)’와 ‘춘추 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잘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저서 ‘사기’에다 안영을
위한 열전을 마련하여 그의 덕을 찬양했다.
“내가 그 당시에 살아 있었다면 그의 마부가 되기를 사양하지 않았겠다.”
 
 

어느 때 경공의 애마가 별안간 죽어버렸다. 경공은 크게 화를 내 마구간지기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안영은 이를 못하게 말리고서는 경공에게 물었다.
“요순(堯舜) 임금이 사람을 죽인다면 누구부터 시작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거야… 과인(寡人)부터 하지.”
요순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으므로 경공은 아찔한 마음에 이렇게 얼버무린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아차 하는 생각이 들어 마구간지기를 사형 대신 하옥을 하라고
고쳐 명령했다. 이에 안영이 다시 말했다.

“이대로 하옥시키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모를 터이니 신이 그 죄목을 알게 해주겠
습니다.”경공의 허락을 얻은 안영은 이렇게 말했다.
“들어라, 너는 죽을죄를 세 가지나 범했다. 첫째는 말을 잘 돌볼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둘째로 임금님이 사랑하는 말을 죽게 했고, 셋째로 하찮은 말 한 마리
때문에 임금으로 하여금 사람을 하나 죽이려 들게 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임금님을 비난할 것이고, 또 제후들이 알게 되면 우리나라를 멸시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죄 때문에 너는 하옥되는 것이다.”

경공은 이 말이 자기에게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용서하라! 나의 덕을 해치지 말라.”
결국 마구간지기의 하옥은 보류되었다.





어느 때 안영은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도 잘생기지 못했다.
초나라 임금이 그를 만나보자마자 느닷없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가? 그대를 사신으로 보냈단 말인가?”

이것은 안영에 대한 모멸이거니와 제나라를 멸시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나라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 없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서울 임치(臨淄)에는 사람이 넘쳐흐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사람을 보냈단 말이냐?”
“그건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 현명한 자는 현명한
나라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나라에 보냅니다.
저는 가장 어리석은 자이기에 귀국에 오게 된 겁니다.”





안영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예스 맨’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는 강직한 재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우회적인 방법으로 말하며 임금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뛰어난 간언 술(諫言 術)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안영이 외국에 사신으로 가 있는 동안 안영의 제지를 받지 않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 경공은 새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때는 마침 추운 겨울철이었으므로 얼어
죽는 사람이 많고 공사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임금은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했다.
안영이 돌아오자 환영 연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안영은 궁궐 공사를 문제 삼았다.
그는 임금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한 후에 서민 사이에 요즘 유행하고 있는 노래 하나를
소개했다.

‘심한 추위에 몸이 언다./ 아! 어찌할거나!/ 임금 때문에 집안사람들은 헤어졌네!/
아! 어찌할거나!’그리고는 안영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 풍간(諷諫)을 못 알아
차릴 만큼 둔한 경공은 아니었다.
“저 궁궐 때문이지? 잘 알았어. 즉각 중지시켜라!”
안영은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서는, 그 자리를 물러나자마자 수레를 몰아 공사
장으로 달려갔다.

“여러분, 잘 들으시오. 당신들에게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지 않소?
우리 임금님께 궁궐 하나 지어드리는데 너무 늦지 않소? 서두르시오, 서둘러!”
일꾼들은 모두 불평하며 중얼거렸다.
“너무하기도 해라! 임금의 꽁무니 말을 타고 앉아서 재촉 질을 하네, 흥.”
안영이 백성들로부터 크게 미움을 사고 있는 그때, 임금의 공사 중지 명령이 전달
되었다. 일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이렇게 해서 안영은 백성의 원망은 자기가 차지하고 공덕은 임금에게 돌렸던 것이다.

윗사람의 발목잡기만 능사로 하고 자기 잘못은 남에게 떠맡기되 공적은 모두 제가
차지하는 요즘의 정치판이나 관료 사회의 풍속과는 딴판이다. 공자는 이러한 안영을
칭찬하여 이렇게 말했다.
“명성은 임금에게 돌리고 재화(災禍)는 자기에게 돌렸다.” 



어느 날 경공이 사냥터에서 돌아와 누각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그가 좋아하는
신하 한 사람이 말을 달려 그리로 오고 있었다. 경공은 기쁜 얼굴로 안영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나하고 장단이 잘 맞는단 말이야!”

“아닙니다. 저 사람은 전하와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하의 단순한 동조
자입니다.”
“장단을 맞추는 것과 동조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다릅니다. 장단을 맞춤은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로 다른 요소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유컨대 그것은 국물과 같은 것입니다.
물, 불, 초, 고기, 소금 등으로 생선을 끓여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맛이 나게 한
것이 국물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 속에 부정되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검토해서 전하의 긍정을
완전한 것으로 하며, 거꾸로 전하가 부정하는 것 속에 긍정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강조해 부당한 부정에서 전하를 구하는 것이 조화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히 동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하가 긍정하
는 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조지 조화가 아닙니다.
물 위에 술을 부어도 아무도 마시지 않으며 거문고나 비파를 들고도 같은 줄을 뜯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경공이 학질에 걸려서 1년이 넘도록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웃나라에서 문병객도
많이 찾아왔다. 신하들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선대보다도 훨씬 많은 제물을 신에게 바쳤습니다만 그래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관들이 기도드리는 방식이 나쁘기 때문이니 신관(神官)을 처벌해
주십시오. 문병객에 대한 체면 문제도 있습니다.”

경공이 이 말을 듣고 안영에게 의논했다. 그러자 안영이 이렇게 말했다.
“진(晋)나라의 사신한테 들었는데, 진나라의 중신 범회(范會)는 명재상이었으므로
신관은 양심을 저버린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일은 꼭 그와
같습니다. 현명한 군주를 섬기고 있는 신관은 기도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신(神)도 나라에 복을 내려주고 신관도 상응한 복을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폭군을 섬기고 있는 신관은 불쌍합니다. 군주가 하는 짓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하면 군주의 노여움을 살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신을 속이게 됩니다.
진퇴양난으로 적당히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니 신도 불행을 내리고 신관도
응분의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경공은 구체적으로 어찌하면 좋은가를 물었다. 안영은 말했다.
“정치를 잘하십시오. 산림, 소택(沼澤), 바다의 소금, 기타 모든 자원이 있는
곳은 국유지로 돼 있어 전하가 파견한 감독관이 백성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의 여러 관소(關所)에서는 직장에 가는 백성의 소지품에도
과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또 귀족은 귀족들끼리 무리한 장사를 하며 세금을 마구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큰 저택이 매일같이 세워지고 있고 향락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궁중의 귀부인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강탈하고 있고 측근들은 시골에 가서 이권을
챙기기에 바쁩니다. 백성들은 남자건 여자건 모두 전하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이라면 저주도 같은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전하의 영토 내에 있는 사람의 수효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사람의 신관이 행하는
기도가 몇 만인, 몇 억인이 내뱉는 저주를 이겨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관을
처벌하기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안영은 검소한 생활에 자족했다.
그의 집은 천한 백성이 살고 있는 누추한 곳에
있었다. 어느 때 이를 딱하게 여긴 경공이 말했다.

“시장판 가까이에 사니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좋은 지역에 새 집을 한 채 마련해 주겠소.”
“조상 대대로 사는 집일 뿐 아니라 제 형편으로는 오히려 과분합니다.
게다가 가게와 가까워 물건 사기가 편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가에 밝겠군?”
“그렇습니다.”
“지금 값이 비싼 것은 무엇인가?”
“끌신(踊)은 비싸고 보통 신은 값이 쌉니다.”

여기서 끌신이란 형벌을 받아 발에 상처가 난 죄수에게 신기는 신을 의미한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곧 형벌을 줄이게 했다.




제나라의 장공(莊公)과 동족으로 중신의 지위에 있던 최저(崔?)는 임금을 제쳐놓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해서 마침내는 장공을 살해했다.
임금을 죽인 최저가 역적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최저의 아내와 놀아난 장공의
과실도 컸다.

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권력의 급격한 변동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안영은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까?
안영은 사건이 일어나자 지체 없이 사건 현장인 최저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앞으로 그가 취할
태도에 대해서 물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체로 임금이나 관리가 모두 나라를 위해서 죽거나 나라를 위해서 망명한다면 나
역시 나라를 위해 죽거나 망명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죽거나 망명하는 임금에
따라야 할 사람은 그 수족들이다.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오늘날 세상에는 임금을 받들고 있는 자가 임금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죽지도
망명도 못 하겠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갈 수는 더욱 없다.”
대문이 열리자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장공의 시체를 무릎에 얹어놓고 통곡했다.

그는 항상 엄정한 자세로 재상의 역할과 임무를 다할 따름이었으므로 변동이 있을
때도 태연할 수가 있었다.
경공 16년, 신흥 세력임을 자랑하는 진씨(陳氏) 일당이 근친 귀족인 난씨(鸞氏)
고씨(高氏)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 곧 관복을 입고 궁궐로 달려가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두 진영에서 안영을 서로 자기편으로 영입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진씨 편에 가담하겠습니까?”
“그 악당에게 무슨 매력이 있는가?”
“그러면 난씨, 고씨에게 붙을 것입니까?”

“이것들도 같은 무리다.”
“그렇다면 그만두고 떠나겠습니까?”
“임금의 위급함을 모른 체하고 떠나갈 수야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