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세뱃돈 코스모스펀드 01-04 16:32
이름: 海美에서 2006/1/26(목) 찢어진 세뱃돈   어머니는 시골 장터에서 30여년 동안 생선장사를 하셨다. 어리굴젓, 새우젓, 조기, 갈치, 동태 따위를 팔았는데, 메인 아이템은 동태였다. 도매상에서 한짝에 2만원짜리 동태를 사서, 죽어라고 바닥에 내리치며  낱마리로 떼어 팔면 5천원쯤 남았다. 학교를 마치면 틈틈이 시장에 나가 꽁꽁 얼어붙은 동태를 떼어주곤 했는데, 설대목은 내게도 한몫 건질 수 있는 기회였다. 설빔이니 세뱃돈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고 기대로 안했다. 대목 장날 동태짝 내리치며 어머니가 바쁠때 대신 돈을 받아서 전달해주다가, 유난히 낡은 지폐가 나오면 슬그머니 찢고는 했다. 만원권이나 오천원권은 소용이 없으니 오로지 천원권만... 저녁을 먹고 나면 잔머리 굴린 댓가를 받아낼 시간이다. "엄마, 이 돈은 개갈 안나네(못쓰겠네)" 평소 매상의 10배는 될 듯한 돈을 세다가 너덜너덜해진 천원권을 슬그머니 옆으로 빼놓고는 어머니 눈치를 본다. 당신이 보기에도 두 조각으로 갈라진 천원권 몇장은 영 돈 꼴이 아니다. "니가 붙여서 가져" 오늘 매상이 녹녹치 않으니, 어머니는 없던 여유마저 생겨 큰 인심 쓴다. 그렇게 해서 만화책 빌려 볼 돈을 확보하곤 했다. 이 어설픈 용돈 뜯어내기 행각이 발각된 것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였다. 돈 찢다가 들켜 각목보다 더 단단한 동태로 뒷통수 맞던 날,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용돈 조달 창구도 같이 잃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대전으로 떠나던 날, 어머니는 앞치마에서 비린내가 풀풀 나는 만원권 세장을 꼬깃꼬깃하게 접어 내 손에 쥐어줬다. "배 곯지 말고 핵교 댕겨라" 80이 넘은 어머니는 이제 치매 증상이 도져 자식마저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신다. 까막눈임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외상값을 받아내던 비상함도,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의 동아전과 값이 왜 다른지 캐묻던 명석함도 이제는 없다. 적어도 1년 반만에 로그인하면서 비밀번호를 수없이 쳐댄 끝에 간신히 깔방에 입성한 막내보다는 훨씬 나으셨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