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많은 생 코스모스펀드 01-04 16:37
이름: 정원사 2006/3/6(월) 한 많은 생       15년을 넘게 중병(重病)에 시달려온 처남이 있다. 두 달 전엔 급기야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는데, 그가 갑자기 혼절하였다고 연락 받은 것은 며칠 전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주말이라 집에 왔던 아내는 처남이 119 구급차에 실려 갔다는 말에 자리에 편히 앉아보지도 못하고 온 길을 되짚어 갔는데, 날이 밝고 점심때 지나 해질녘이나 되어서야  아내에게서 소식이 왔다. 아이들 때문에 동행 하지 못했던 나는 밤을 뜬눈으로 새우다시피하고 하루 낮이 다 지나도록 손바닥을 연신 비벼대며 전화기 옆을 서성거리던 터라, 벨이 울리자마자 엎어지듯 달려들어 수화기 집어 들었다. 아내는 울먹였다. 빨리 그곳으로 오라 한마디 해놓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저 흐느끼기만 하였다. 더 물을 것도 없었다.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고 급히 대문을 나섰다. 걸음이 바빠 신발이 질질 끌렸다. 아내보다 두 살 아래인 처남에게 만성신부전증이라는 몹쓸 병이 찾아든 것은 처남의 나이 갓 삼십에 접어든 때였다. 신부전증은 타인의 신장을 받아 이식하는 게 유일한 치료법이라 가족이 서로 자신의 콩팥을 내 놓겠다 다퉜지만 부모는 칠순 노인들이어서 기력이 쇠했으니 마땅한 이는 아내뿐이었다. 아내는 타고나길 남다르게 긴장하는 체질이다. 특히 병원을 몹시 무서워한다. 주사라도 한대 맞을라치면 하도 긴장해서 새파란 얼굴로 벌벌 떠는 것이 어린아이만도 못한 사람이다. 그렇게 겁 많은 아내인데도 큰 망설임 없이 마음을 정하였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몹시 당혹스러웠다. 그 무렵은 아내와 내가 결혼 날짜를 잡고 예식장을 고르던 때였다. 아내 될 사람이 멀쩡한 콩팥을 떼어내겠다, 하니 나로서는 선뜻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그렇다고 강력하게 반대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마음이 갈피를 못 잡았다. 이리저리 흔들리기는 아내 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서른을 넘긴 노처녀였다. 연로한 부모를 마땅히 봉양할만한 이가 없어 어언 간 혼기를 넘긴 것이다. 헌데 나와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지 설 자리를 못 찾고 방황하던 남동생이 그즈음 비로소 튼실한 직장을 잡았고 일에 충실하여 안정을 찾아갔다. 이 때 우연히 나와 선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나 나 나 생전 처음 단 한번 본 선에서 서로 간 마음이 쉽게 끌리었으니 인연은 따로 있단 말이 맞지 싶다. 피차 서른을 훌쩍 넘긴 노총각 처녀였다. 몇 차례 더 만나면서 결혼 얘기를 쉽게 꺼내었고, 그녀도 이젠 동생을 믿고 집을 떠나 여자 본연으로 돌아가려 맘먹었던 것인데, 집안에 큰 우환이 닥친 것이었다. 동생이 그리되자 깊이 생각하더니 그동안 오간 얘기를 없던 일로 하자 하였다. 그게 나를 위해서도 좋겠다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여자의 손을 꼭 잡았다. 짐을 나누어지면 훨씬 가볍지 않겠느냐 말하며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도리질을 쳤다. 자기의 결정대로 해야 후회가 없을 것이라 하며 단호했지만 세 번 네 번 자꾸만 설득하자 결국엔 그녀가 눈물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신장을 떼어주는 것에 동의했는데 그도 맘같이 되지 않았다. 나중 알고 보니 처남은 타인의 신장을 받을 수도 없는 처지였다. 같은 증세의 다른 환자들과 달리 극심한 간 경변 증세까지 가지고 있어 몸에 칼을 댈 수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삶을 유지하려면 인공신장실에 의지하는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고 한차례에 다섯 시간 걸리는 혈액투석을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받으며 이때까지 살아오게 되었다. 수시로 병원에 입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늘 합병증을 염려해야 되었다. 몸도 점차 쇠약해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때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났겠다, 푸념하여 누이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였지만 끝내 절망하지는 않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무엇이든 해보려 바락바락 애쓰는 모습이 눈물겨웠다. 10여 년간 그렇게 조심하고 버텨왔는데 2년 전에 합병증이 오고야 말았다. 간암이었다. 늘 병원 문을 드나들던 터라 비교적 일찍 발견하였고 수술치료를 한다면 완치가 가능한데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수술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몸에 칼을 대게 되면 피를 많이 흘리는 게 당연한데, 간 경변 때문에 피가 잘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상태를 설명하던 담당의가 수술을 못하니 차선책을 쓰겠다 말하였다. ‘간 동맥 화학색전술’ 이라는 치료법이었다. 이는 간암세포로 흘러들어가는 혈류를 차단하는 치료법 인데 간암조직을 영양소 차단으로 굶어죽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그간 병원치료와 함께 청국장을 복용하며 2년이 흘렀는데 두 달 전 검사에서 안타깝게도 암세포가 온몸으로 전이되었다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으니 결국 의료진들도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리고 치료를 포기하였다. 아내의 전화를 받자 마음이 급했다. 이웃집할머니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는 부리나케 청주로 달려갔다. 병원에 들어서자 처남은 산소 호흡기를 쓰고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이미 운명한 상태였지만 멀리서오는 매부를 기다리게 하느라 아내가 취한 조치였다. 내가 도착하자 실낱같은 맥을 억지로 유지시키던 약을 서서히 줄이고 두 시간쯤 뒤엔 산소마스크를 벗기었다. 심장 박동을 알려주던 신호음이 띠 하고 멈췄다. 바람 같은 세상 이슬 같은 인생이요 시름도 많고 설움도 첩첩인 삶 이었다. 3일 뒤, 아내의 가게에서 둘이 마주 앉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아내가 눈물마저 메마른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보, 영안실에서 염습할 때 철이(亡者)의 얼굴 봤어?” “얼굴이 왜?” “웃는 표정 이었어. 깊이 잠들어 있는 듯 편안한 표정이었어.” “왜 아니 그렇겠어. 그토록 지겹게 고생했는데.... 놓여났으니 얼마나 편하겠어.” 대답하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