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상황판단’이 정책 불신·사태 악화 이어져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정부의 잇단 엉터리 상황 판단이 보태져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12일 지(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위해 워싱턴에 가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은행의 외채 상환자금을 100% 외환보유고에서 지원하기로 한 만큼 시장불안이 가라앉을 것”이라며 “13일부터는 환율이 떨어질 것이다”고 장담했다. 강 장관의 장담이 빗나간 적은 하도 많아서, 이번 일은 별 화제조차 되지 않았다.

금융위기감이 퍼지고 있던 9월 19일 9차 위기관리 대책회의에서 정부는 “(미국발 금융시장 불안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 외화차입구조 등을 감안할 때 무리없이 대처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고 한다. 지난 2일 연 11차 회의에서도 “미국 상원에서 구제금융법안이 통과됨에 따라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앞서 열린 지난 9월 12일의 8차 회의에서는 “최근 두바이유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등 국제유가가 어느 정도 안정세에 들어섰고 내년 하반기부터는 세계경기가 좋아진다”고 전망했다. 이날은 미국발 금융위기 영향으로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을 넘어선 날이었다. 그럼에도 정부의 눈에는 ‘유가’만 보였다. 물가가 안정돼야 성장률을 높이는 부양책을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가 하락이 세계경기의 급격한 침체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음에도, 이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부의 ‘나홀로 낙관’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 환율이 치솟고 있지만, 정부는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고 강조할 뿐이다. 외화 유동성이 나쁘고 건전성이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국제 신용평가회사들이 우리나라 은행들의 신용등급 전망을 낮췄지만 정부는 ‘외채 만기구조나 건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강조한다.

이같은 잘못된 상황 판단과 뒷북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는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목표를 추구하는 게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앞날을 낙관하는 정부는 ‘길게 보고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감세와 규제완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 결과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제대로 된 정책을 펴도 먹혀들기 어려운 사태로 치닫고 있다.

정남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