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제노동기구(ILO)가 이번 글로벌 금융 위기의 피해를 전 세계 수억 명의 서민들이 떠안게 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 발표된 보고서들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분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번 보고서는 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진행된 금융 세계화의 결과 전 세계에서 빈부 격차가 극도로 심화되었다는 분석도 포함하고 있다. 결국 금융 세계화는 지난 수십년 간 꾸준히 전 세계 서민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데 이어, 이번 금융 위기를 통해 결정적인 피해를 떠넘기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한 데도 최근 우리나라 경제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것은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급등락 소식뿐이다. 금융 위기로 인한 피해가 정작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 것 같은 모양새다. 마치 온 국민이 비슷한 수준의 고통을 나눠가지기라도 할듯이 말이다. 과연 그럴까?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한 사람은 물론 하루하루가 불안할 것이다. 상장기업들의 경우도 기업실적과 상관 없이 기업가치가 하락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환율 상승은 곧바로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니 이 경우는 그 피해 대상이 조금 더 넓다. 게다가 최근에는 원-엔 환율의 급등으로 인한 환차손도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다.
우선, 주식투자의 경우는 주가가 하락한다고 주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평가손실이 발생할 뿐이다. 따라서 손절매를 하지 않는 이상은 아직 손익을 따지기에는 이르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대출을 받아 주식투자를 한 경우라면 문제는 더 복잡해지겠지만...
게다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은 이들 투자자들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투자를 감행했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정확히 인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든 투자에는 위험이 뒤따른다는 사실 - 경우에 따라서는 투자비용을 모두 날릴 수 있다는 사실까지를 포함해서 - 을 알고서도 투자를 했다는 사실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상장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기업가치가 폭락해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를까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다만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줄어들 뿐이다. 어차피 주식시장을 통해 기업에 돈이 흘러들어가는 경우는 최초 기업공개를 했을 때와 유상증자를 할 때 뿐이지 않은가. 최근에는 주주들의 압력으로 여유자금을 동원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경우도 잦아졌지만 지금은 그런 식으로 주가를 상승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환율 상승으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는 대개 하청 중소기업들에게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수입 원자재가의 상승이 납품가에 반영되기 어려운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불공정한 하청구조 때문이다. 언젠가 중소기업 사장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시위를 했던 것도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대기업들에게는 구조조정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감원, 아웃소싱 등을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은 이미 10년 전부터 일상이 되어왔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계층은 주식과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나 대기업들이 아니라, 오히려 주식이나 펀드 투자를 할 여력도 없는 서민들, (중소기업) 임금 노동자들, 수입물가 상승의 부담을 직접적으로 떠안게 되는 자영업인들, 그렇잖아도 좁아진 고용 시장에 이제 막 던져진 청년실업자들이 아니겠는가.

금융이라고는 은행 예금과 적금밖에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온갖 복잡한 금융 기법과 파생상품으로 인해 발생한 위기의 피해를 떠안으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순이다. 자신의 부동산 투기를 위해 가난한 농민들의 피같은 돈을 앗아가는 고위 공무원과 정치인들에게 무얼 기대하겠는가 마는 그나마 이런 보고서라도 나온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