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성원기자]지난 겨울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시달렸던 시중은행들이 약 1년 만에 다시 '돈가뭄'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화차입이 여의치 않은 데다 양도성 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는 등 전반적인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장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결국 은행들은 '고금리 특판예금'을 앞세워 시중 자금을 꾸역꾸역 끌어모으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외화차입 지급보증과 외화유동성 공급 대책이 다소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이지만, 이같은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다시 찾아온 '돈가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애태우는 것은 지난 겨울과 비슷하다. 원인이 다를 뿐이다. 지난 '겨울 가뭄'의 원인이 국내 증시 활황에 따른 이른바 '머니무브' 때문이었다면, 지금 은행들이 겪는 유동성 부족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돈맥경화'에서 촉발됐다.
일단 외화차입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외화예금 잔액은 지난 16일 현재 109억8300만달러로 지난 달 말보다 1억500만달러 감소했다. 3~5개월 만기 달러화 예금금리가 지난 달 말 4.17%에서 6.15%로 급등했지만 외화수신이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반면 외화대출은 급증하는 추세다. 이들 5개 은행의 외화대출 잔액은 16일 현재 196억5600만달러로 지난 달 말보다 3억달러 이상 증가했다. 은행들이 달러 부족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국내 은행의 신용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CD와 은행채 등 시장성 수신 금리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지난 달 22일 5.79%였던 91일물 CD금리는 어제(20일) 6.12%로 약 한 달 만에 0.33%포인트 상승했다. 지난 2001년 1월19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기간동안 91일물 CD금리는 단 한 번의 하락 없이 꾸준히 상승세를 유지했다.
은행채 금리도 마찬가지다. 증권협회에 따르면 20일 3개월짜리 은행채 금리는 6.3%를 기록했다. 지난 달 22일 5.81%를 기록한 뒤 약 한 달 만에 0.5%포인트 가량 상승했다.
시장성 수신을 통한 자금조달 비용이 계속 늘어나다보니 결국 시중은행들의 은행채 잔액은 대부분 감소했다. '돈'을 확보하는 데 드는 '돈'이 너무 많이 들다보니 은행들은 사실상 은행채 발행을 중단한 상태다.
◇ 고육지책으로 선택한 '고금리 카드'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은행채 규모가 25조원 수준에 이르는 것도 은행권에는 부담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 4분기에 만기에 이르는 은행채는 25조4900억원으로 올 3분기 18조원보다 무려 41%나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액별로는 기업은행이 6조4030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4조1120억원), 우리은행(3조3550억원), 신한은행(2조7100억원)이 차례로 뒤를 잇고 있다.
결국 은행들은 전례 없는 '고금리 특판예금'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화나 시장성 수신을 통한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선택한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현재 주요 시중은행들은 7%를 넘어서는 고금리 특판예금을 잇달아 출시해 시장성 수신 부족분을 메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달 들어 지난 16일 현재 6개 시중은행의 정기예금은 9조5957억원 증가했다. 가장 적극적인 고금리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하나은행의 정기예금은 3조7354억원이 늘었으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각각 2조8548억원과 1조6095억원 증가했다. 은행의 주요 수익기반인 예대마진 하락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금조달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이에 대해 20일 시중은행 자금담당 부행장들을 불러 지나친 고금리 경쟁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고금리 경쟁이 심화될 경우 은행의 수익성 악화과 대출금리 상승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정부는 1000억달러 규모의 외화차입 지급보증과 300달러 규모의 외화유동성 공급 대책을 밝혔다.
이에 다음 날 증시는 상승세를 보이고 원달러 환율은 하락하는 등 시장은 우호적으로 반응하는 듯 보이지만 장중 급변동하는 불안한 흐름은 계속됐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자금조달이 너무 안 되다 보니 은행들이 다소 무리하면서까지 고금리 경쟁에 나서는 측면이 있다"며 "이번 유동성 부족의 근본 원인은 미국발 금융위기 등 외부 악재인 만큼 전 세계적인 금융시장 안정이 이뤄져야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