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이 또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강도 높은 처방을 내놨지만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글로벌 신용경색이 여전한 가운데 미국발 경기 침체가 현실화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 금융시장은 패닉(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코스피 한 때 1100선 붕괴=22일 주식시장은 ‘백약’이 무효였다. 정부의 금융·건설 지원 대책에도 코스피지수는 끝없이 추락했다. 연기금 투입이 없었더라면 1000선마저 붕괴될 상황에 처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되면서 본국 유동성 확보를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가 이어졌고, 투신권도 손절매와 환매에 대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매도세에 가세했다..

이날 증시 폭락은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가 직접적인 계기였지만 배경에는 금융위기 확산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이 깔려 있다. 교보증권 주상철 투자전략팀장은 “신용경색 확산,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 우려 등 악재가 이어진데다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도세로 코스피지수가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며 “지금으로서는 주가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환율 장중 1400원=정부의 외화유동성 공급으로 외환시장은 이번주 초 다소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외화차입 여건을 보여주는 리보(LIBOR·런던은행간 금리) 금리가 1주일째 하락하면서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 신청 이전인 9월초 수준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이날 주식시장이 무너지자 환율은 다시 천장이 뚫리며 달러당 1400원까지 급등했다. 외국인들의 주식 매도로 주가가 하락하고, 하락한 주가가 원화가치를 떨어뜨려 외국인의 주식시장 이탈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외환은행 김두현 차장은 “요즘 외환 딜러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은 주가지수와 외국인의 주식 매도세”라며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주가가 반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역외 외환시장에서 달러 매수세가 나오면서 환율을 끌어올렸다”고 설명했다.

거래도 여전히 부진했다. 이날 달러 거래량은 32억2000만달러로 전날(25억3000만달러)보다 조금 늘어났지만 평상시의 절반도 안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환율은 달러가 조금만 풀려도 급락하고, 매도세가 몰리면 다시 급상승하는 흐름을 보였다.

환율이 올 연말 이후에는 급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이날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 보고서에서 “각 국의 구제금융조치가 효과를 발휘하는 올해 말 이후에는 환율이 하향 안정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달러 위주로 거래되는 국내 외환시장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해외로부터 공급되는 달러 유동성이 조금만 늘어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