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신용위기’ 5대 요인은 헤럴드생생뉴스 10-28 17:43
한국 정부가 흔들리고 있다.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냉담하다. 뒷북 대응에 예측력 부재라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정부의 신뢰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시장의 불신에는 정부의 잦은 말바꾸기와 부처간 엇박자, 가끔씩 나타나는 무모한 자신감도 한 몫 한다. 비단 경제부처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3대 사정기관중 하나인 감사원은 쌀직불금 파동으로 그 위상은 크게 실추됐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유인촌 장관의 막말로 위신이 구겨졌다. 재정부, 금융위, 한국은행등 경제부처 ‘트리오’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광우병 파동과 쌀 직불금사태등을 겪으면서 농림부, 감사원에 이르기까지 국민과 시장의 불신이 정부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 와중에 강만수 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현 경제팀을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과 시장에서 비등, 한국정부의 ‘신용도’가 부도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1>떨어지는 예측력에 무모한 자신감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예측력은 떨어지는 반면 지나친 자신감으로 사태를 그르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외환 및 주식시장과 관련해 “괜찮다” “과민반응이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한발 더나아가 “환율이 떨어지고, 금융시장은 곧 안정될 것”이라며 장밋빛 전망을 남발했다. 하지만 글로벌 주식시장이 휘청이면서 우리 주식시장도 종합주가지수가 900선이 한차례 깨지고 코스닥지수는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폭등, 1500선을 위협하고 있다. 국민연금을 포함해 국내 기관이 받쳐주는 사이 외국인은 팔자에 치중, 외국인 순매도 금액이 이달 24일 기준 40조원을 넘어섰다. 주식시장과 외환시장만을 놓고 보면 가히 11년전 외환위기 수준에 버금간다. 지난 9월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이 무산된 것은 자만의 결과였다. 당시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로드쇼를 떠나기 앞서 “최근 국내 금융시장에서 나오는 9월 위기설이 진짜인지 아닌지 보여주러 간다”며 큰소리 쳤고 강만수 재정부 장관이 맞장구를 쳤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내년도 성장률을 5%로 잡은 2009년도 예산안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고쳐야할 예산을 갖고 재정부 예산실은 지난 6개월을 시름한 꼴이다. 지식경제부는 무역수지 전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대외환경이 급변한 탓도 있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신뢰는 떨어졌다. 지경부는 올초 연간 무역수지를 130억달러 흑자로 제시했다가 지난 7월 19억달러 적자로 대폭 수정한데 이어 재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올들어 9월말까지 누적적자가 벌써 140억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다. <2>말 바꾸기로 혼선 거듭 “위기다” “아니다” 경제수장들의 그때 그때 다른 발언에 시장과 국민의 혼선은 가중되고 있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19일 “외환보유액과 금융회사 건전성을 고려하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가 지난 24일에는 “외환위기때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고 선회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지난달 17일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풍부해 단기 영향은 크지 않을 것”, 그리고 이달 22일에는 “한국은 10년전 외환위기보다 더 잘 준비돼 있다”고 했지만 이달 24일에는 “금융위기 파급효과가 10년전보다 상당히 클 수 있다”면서 뒤늦게 위기감을 설파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외환위기는 없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한동안 “IMF때와 다르다”고 했다가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등 헷갈린다. 강 장관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력은 하겠지만 내년도 실질 경제성장률 4%대 달성은 쉽지 않다”고 처음으로 공식 선언한 이후 4%대 달성은 요원해졌다. 재정부 예산실은 이미 성장률 5.0%를 기준으로 짠 내년도 예산계획의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재정부가 불과 두달만에 입장을 돌변한 것도 빈축을 사고 있다. 재정부는 지난 8월 새정부 출범 이후 헌법재판소에 처음 제출한 의견서에서 종부세가 합헌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헌재의 결정이 임박한 최근에는 “조세원칙에 맞지 않는 종부세를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는 ‘위헌’ 취지의 새 의견서를 제출했다.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서도 주택담보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적절하다고 했다가 수도권투기지역을 대폭 해제하면서 사실상 금융규제를 무력화시켰다. <3>시장 혼란 뒤 뒷북 대응 현 경제팀이 받는 가장 많은 지적중 하나가 바로 뒷북이고 늑장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7일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전격 인하했지만 뒤따른 것은 뒷북행정이라는 싸늘한 비판이 주류다. 한국은행이 위기상황을 간파하지 못한 채 고루한 경제이론과 독립성에 매달려, 실기했다는 지적들이 많다. 정부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직간접으로 한은이 유동성공급에 적극 나서도록 요청했지만 이성태 한은 총재는 시종일관 신중 모드를 견지했다. 한은은 결국 지난 17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청와대와 정부의 강력한 요구로 유동성 공급에 나섰지만 한발 늦은 대응탓에 효과는 반감됐다. 정부는 올들어 위기관리대책회의만 12번을 열었지만 “위기관리가 안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소기업을 벼랑끝으로 내몬 키코(KIKO) 사태는 늑장 대응의 전형이다. 올초부터 환율 급등으로 키코 피해기업들의 사례들이 접수됐지만 일부 기업에 한정된데다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선택한 문제라며 등한시 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키코는 경제에 핵폭탄으로 등장했고 부랴부랴 지원대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9월 금융위기설이 나온지 몇달이 지난뒤에야 나서거나 건설업체들이 파산직전으로 내몰려서야 대책을 만들어낸 것, 선진 각국이 은행 대외채무를 지급보증하자 뒤늦게 따라한 것도 뒷북대응의 사례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꾸준히 경제부총리제 부활의 필요성이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요지부동이다.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에 늑장대응으로 국가경제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초래한 것이나 쌀직불금 사태에서도 정부가 뒤늦게 나서면서 농심을 멍들게했다. <4>중구난방, 정책당국 엇박자 이명박 정부 출범 때부터 때부터 촉발된 문제였다. 강만수 재정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고(高)환율, 저(低)금리를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환율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물가와 금리를 직접 담당하는 이성태 한은 총재와 보이지 않는 알력 다툼을 벌였다. 지난 5월 강 장관과 이 총재의 이른바 ‘폭탄주 회동’으로 잠시 소강 상태에 들어가는 듯 했지만 국제유가로 촉발된 물가 불안, 환율 급등은 다시 두 경제수장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강 장관은 강력한 환율 개입을 주장하기 시작했고 외환보유고를 관할하는 이 총재와 견해차를 드러내며 환율 불안에 불을 붙였다. 지난 24일까지 진행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만수 장관, 이성태 총재는 엇갈린 시각을 극단적으로 드러냈다. 현 경제위기에 대한 진단과 내년 경제성장률을 놓고 각각 낙관론과 비관론을 펼쳤다. 산업은행 민영화 방법을 둘러싸고도 재정부와 금융위가 다른 입장을 견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책 혼선은 금융당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 정책을 둘러싸고 조율되지 않은 재정부, 국토해양부 등이 각자의 주장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혼선을 부추겼다. 고유가 대책 등 정책 혼선을 빚은 사례는 무수하다. 청와대와 국회도 주요 경제정책을 둘러싼 혼선에 한몫 하는 양상이다. 현 경제팀 교체와 경제부총리제 부활 등을 놓고 청와대와 국회, 정부간에 치열한 논리 싸움이 한창이다. 올 9월 금융위기설(說) 진화, 외신의 오보에 대한 재정부 등 금융당국의 중구난방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자 급기야 외신 대변인 제도 부활을 검토중이라는 얘기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5>은폐와 엄폐, 진실 감추는 정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당장 있을 수 있는 여론의 뭇매가 두려워 부처의 실수나 공직자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정부의 무책임한 행동도 한몫을 한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비롯해, 조류인플로엔자(AI), 중국산 멜라민 분유 사태 등으로 이어지는 식품 안전문제는 정부가 핵심 정보를 의도적 혹은 실수로 감춰 국민들의 불신이 더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올 상반기 전국을 강타했던 미국산 쇠고기 사태를 보자. 당초 정부는 지난 4월 미국과 수입 쇠고기 위생조건 협의를 마친 후, 미국산 쇠고기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존과 같이 30개월령 미만 쇠고기는 바로 수입을 허용하고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미국이 동물성 사료 강화요건을 발표하면 개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단계적이 아닌 전면 개방이라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협상 기간 동안 미국 정부는 강화된 동물성 사료 요건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이같은 미국정부의 움직임을 몰라 ‘단계적 개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항변했지만, 두 차례에 걸친 청문회를 통해 정부는 협상 당시 이 사실을 이미 인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쌀직불금 문제 역시 정부가 의도적으로 숨겼던 핵심정보가 뒤늦게 밝혀지면서 정부의 불신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감사원은 지난해 4월 2006년 쌀 직불금 수령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부당 수령자 명단을 공개하기는 커녕 관련자 처벌도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은폐 이유는 내달 10일부터 진행되는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5개월 뒤 대선상황을 염두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형곤 조현숙 신소연 기자(kimhg@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