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경색은 남북관계의 ‘새판짜기’를 시도하는 이 정부와 이에 북한이 반발하는 대치 구도에서 비롯됐다. 그 중심에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존중과 이행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두 정상선언의 존중·이행 입장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를 남한이 대화 의지가 없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여겨왔다.

북한이 지난 12일 ‘육로 통행 제한’을 예고하면서 “역사적인 두 선언에 대한 남조선 괴뢰당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가 최종 확인됐다”고 밝힌 것이 방증이다.

반면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대북정책의 우선 순위에 올려놨다. 이에 따라 ‘비핵·개방 3000’ 구상이 나왔지만, 현실성이 결여된 ‘구호’라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북한도 “북남관계 파국으로 모는 반통일선언”(4월1일자 노동신문)이라고 거부했다. 정부는 지난 6월 ’북핵의 상징’인 영변 냉각탑 폭파 등 북핵 문제가 진전됐음에도 남북관계 개선 조치에 나서지 않았다. 이러는 가운데 지난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지난 9월 남한에서 불거진 김 위원장 건강이상설, 지난달 남한 우익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 등은 남북관계를 한층 악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그동안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에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유도하기 위한 행동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우리는 강경 대응책을 통해 대결국면을 조성할 의사는 없다. 북한을 돕고 싶다는 진정성에 대해 조금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13일 핵심 관계자)고 강조하지만 말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 이유다. 이 대통령이 북한의 ‘육로 통행 제한’ 경고에 대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한 것은,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정도를 보여준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홍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