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경기침체)의 공포’에 이어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오는 것인가. 최근 3·4분기 경제지표가 발표되는 가운데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경제권에서 디플레이션(통화수축에 따른 물가하락)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때문에 각국 통화·경제 당국은 디플레이션이 침체기의 경기 회복을 막아 침체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까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발표된 미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에 비해 2.8% 하락했다. 이 하락폭은 1974년 PPI를 공식집계한 이후 최대폭이며 유사 지수를 포함하면 47년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이는 당초 블룸버그 통신 등에서 전망한 마이너스 1.9%의 하락률을 월등히 넘어선 것이다.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예상보다 물가하락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19일 발표하는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또한 소비침체가 간접적으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기록적인 하락률을 보일 전망이다.

블룸버그는 조사 전문기관들의 전망치를 종합, 10월 CPI가 0.8%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뚜렷한 물가 하락세는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수요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이다. 여기에 급격한 유가하락이 물가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10월에만 24.9% 폭락한 미국 내 휘발유 도매가격이 물가하락을 부추겼다.

물가가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은 얼핏 반갑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물가 하락 기조가 지속되면 소비자들이 소비를 늦춤으로써 기업의 실적은 지속적으로 악화된다.

또 통화량이 줄어들어 화폐가치가 상승하면 현금을 보유하는 것이 최고의 투자가 되기 때문에 돈줄은 더욱 마른다.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국면이 나타나면 경기 침체의 늪이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경제 당국과 시장 참여자들이 걱정하는 이른바 ‘D의 공포’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는 곳은 금융위기의 진원지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의 디플레이션 우려는 상당하다. 이날 발표된 영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가 4.5%를 기록, 16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다. ‘디플레이션 위험 존재하나’(BBC) ‘디플레이션, 무엇이 다른가’(가디언) ‘새로운 기피 단어 디플레이션’(더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앞서 16일에는 고든 브라운 총리가 “지난해와 최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문제였지만, 내년의 문제는 디플레이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18일 “아직 유로존(유로화 사용 15개국)에서 디플레이션의 경향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지만, 이 발언의 배경에는 통화관리 당국 책임자로서 디플레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중국도 통화정책 목표를 디플레이션 방지에 뒀다.

17일 중국 인민은행은 “물가 하락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크게 완화됐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을 방지하는 데 단기적인 정책 방향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발표했다.

<정환보기자 botox@kyunghyang.com> 경향신문  기사전송 2008-11-19 1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