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각료 인선이 파행을 거듭하고, ‘초당파적 정치’ 실험도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그레그 상무장관 내정자
‘이념적 충돌’로 전격 사퇴

공화당 상원의원 저드 그레그 상무장관 내정자는 12일(현지시각) “경기부양책과 인구조사 문제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이념적) 충돌을 확인했다”며 사퇴를 전격 발표했다.

그레그의 선언은 오바마에게 장관 내정자 한 명 사퇴 이상의 타격을 입혔다. 지난 1월 대가성 정치자금 수수의혹으로 물러난 빌 리처든슨 상무장관 후보자, 탈세 의혹으로 지난 3일 사퇴한 톰 대슐 보건장관 내정자에 이어 세 번째 낙마다.

무엇보다, 그레그가 공화당 출신으로 민주당 정권에 참여한 ‘초당파적 정치’의 한 상징이어서 오바마에게는 뼈아프다. 이제 오바마 내각에 공화당 출신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레이 라후드 교통장관만 남게 됐다.

그레그의 사퇴는 오바마가 내세운 당파를 초월한 ‘통합의 정치’가 현실정치에서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시켰다. 그레그가 사퇴 이유로 꼽은 경기부양책과 2010년 인구조사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첨예한 대결을 보였다. 약 8천억달러의 경기부양책과 관련해 민주당은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에 역점을 뒀지만, 공화당은 재정낭비라며 감세 쪽에 무게를 실어 충돌을 빚었다. 결국 오바마가 공화당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공화당 출신을 상무장관으로 지명하기에 이르렀지만, 그레그의 사퇴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 재무부와 함께 경제위기 극복의 전면에 나설 핵심 부서에서 수장의 공백은 한 달을 넘길 전망이다.

또 인구조사는 연방정부 예산지원 및 연방의회 의석배분 등의 기준이 되는 민감한 사안으로, 공화당 출신 그레그가 이끌 상무부 산하의 인구조사국이 백악관에 보고하도록 한 게 문제가 됐다.

오바마가 “실망스럽지 않다고 한다면 진심이 아니다”라고 침통해한 이날, 미치 맥코넬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그레그가 원칙에 따른 결정을 내렸고, 다시 돌아오게 돼 기쁘다”고 환영했다. 오바마는 “주요 사안에 대해 초당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고 밝혔지만, 그레그 후임으로 공화당 출신을 임명하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그레그의 사퇴는 워싱턴에 초당파적 정치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오바마의 약속이 심하게 흔들린다는 인식을 각인시켰다”고 13일 분석했다.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