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前대통령이 세상을 떴다.  그것도 전직 국가원수의 신분으로는 충격적인,  암벽에서의 투신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생을 마쳤다.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처해 있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노대통령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애초부터 그는 정치적 기반이 약했다.  광범위하고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기반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아니었다.  세련되고 무리없이 국정을 수행하거나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내편으로 사로잡는 흡인력 같은 것이 부족했다. 

대신 늘 첨예한 대립과 논란의 중심에 서길 마다하지 않았다.  흔히 ‘좋은 게 좋다’라고들 하지만 그는 그런 게 없었다.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라는 생각을 결코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다.  노회한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열혈 테러리스트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노 전대통령이었다.

그 또한 법조인 출신이니 검찰수사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과거에 그는 늘 도덕성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독재투쟁의 선봉에 섰다.  남에게 매도 당하기보다는 남을 매도하고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본인이 깨끗하지 않고서는, 본인이 결벽증이 없이는, 그렇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던 그가 ‘수뢰’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는 입장이 됐다.  몇 안 되는 정치적 동지와 후원자들은 검찰의 조사를 받거나 갇힌 몸이 됐다.  나같은 평범한 월급장이야 털어본들 ‘법’에 저촉될 게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사업이나 정치 하는 사람 치고 털면 먼지 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대한민국의 법 체계 자체가 상호 모순적인 조항들이 많은데, 그 많은 법을 어떻게 지켜가며 사업이며 정치를 할 수 있겠는가.  한 마디로 불가능하다.  박연차며 강금원 뿐만아니라 대한민국 기업인이라면 검찰이 마음먹고 다그치면 빠져나갈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일 것이다. 

정치인이라고 돈 없이 정치할 수 있는가.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조건 없는’ 돈을 제공하면 거절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이 권여사가 돈 받은 사실을 몰랐다면 물론이고, 설사 알았다 해도 노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물론 법적으로는 받아서는 안되는 돈이지만, 받아도 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돈이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까?  일종의 ‘후원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위기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끝까지 검찰수사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결과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고, 무승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의 최종판결까지는 길고 피곤한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동지와 가족들은 만신창이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 뻔했다.  자신의 명예도 이미 땅에 떨어진지 오래다.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이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원칙적으로 자살에 반대한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은 정치가라기보다는 武人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의 이름에도 ‘武’자가 들어있지 않은가.  무인들은 본래 명예를 중시한다.  싸움에 지고 적의 손에 사로잡혀 구차하게 생을 구걸하는 부끄러운 꼴을 보이기보다는 장렬하게 自決함으로써 명예를 지키는 편을 택한다.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는 운동권 가요의 한 구절처럼...

이제 그는 갔다.  그에게는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  그가 죽음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의 공과가 뒤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그는 최소한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충실하게 살려고 애썼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어제까지 그를 욕하고 헐뜯던 자들이 오늘은 조문을 간다고 법석이다.  웃기는 짓들이다.)

어쨌건 노 전대통령은 그에게 주어진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  설사 그것이 국민 대부분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라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6.25 이후 지나치게 ‘우향우’ 상태로 살아왔다.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겠지만, 그러자면 남한사회의 지나친 우경화 상태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노 전대통령의 집권으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척추측만증’이 조금은 개선되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이 노 전대통령을 이 땅에 보낸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