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누명 벗는순간 눈물만… 코스모스펀드 08-28 21:52
[한겨레] 1982년 송씨일가 간첩사건 무죄 판결 송기준(81)씨는 남색 베레모를 벗어 손에 꼭 쥐었다. '무죄'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눈물이 쏟아졌다. 베레모 모서리가 촉촉해졌다. 육촌 누이동생 송기복(67)씨는 선고가 끝났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손으로 가슴을 쳤다. 1980년대에 월북자와 납북자, 재일동포 가족에게 누명을 씌운 사건들 중에서도 28명의 연루자를 배출한 가장 큰 가족간첩단 사건인 '송씨 일가 간첩단 사건'이 조작됐음을 국가가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송기복씨는 1982년 3월2일 교장의 호출을 받았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친정아버지에 대해 물어볼 게 있다"며 국가안전기획부 청주분실로 그를 데려갔다. '북한에 다녀온 것을 불라'며 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15일을 버티던 그는 결국 "다녀왔다"고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다녀왔느냐'는 신문에 "판문점을 통해 갔다"고 했더니 '네가 뭔데 판문점을 통해 가냐'며 주먹이 날아왔다.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얘기를 좀 해 달라"고 애원했다. 음료대리점을 하던 송기준씨는 육촌동생이 끌려가고 닷새 뒤 눈이 가려진 채 지프에 태워졌다. 20년간 간첩으로 활동한 사실을 말하라고 했다. 정강이를 걷어차던 수사관들은 그를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물을 들이부었다. 결국 "인천 만석동 부두에서 공작선을 타고 북에 갔다 왔다"며 없는 과거를 스스로 조작한 뒤에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송씨 일가 28명은 이렇게 간첩이 됐다. 송씨 일가는 한국전쟁 때 월북한 송기복씨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안기부는 이들이 남파 간첩과 여러 차례 만나고 간첩 활동에 가담했다고 발표했다. '송씨가 충청 지역에 지하당을 건설한다'는 뜻으로 '송충건'이라는 가명을 쓰는 이가 1957~77년 사이 남파됐다는 전향 간첩의 진술이 충북 음성에 살던 송씨 일가를 전대미문의 가족간첩단으로 만든 단서가 됐다. 당시 서울형사지법은 기소된 12명 중 송기준씨에게 사형, 송기복씨에게 징역 10년 등을 선고했다. "송기준씨는 입북했었다고 지목된 시기에 이틀 이상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고 증언한 음료대리점 경리는 위증 혐의로 구속됐다. 대법원은 "자백에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지만, 서울고법은 다시 유죄를 선고했다. 1984년 대법원이 다시 파기환송했는데도 서울고법은 거듭 유죄를 선고했고, 송씨들의 세번째 상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조병현)는 28일 이들의 여덟번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유일한 증거인 자백에 대해 임의성을 의심할 사유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27년간의 고통을 이번 판결로 보상받을 순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위로가 돼 조국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