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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임 이사 MB 남자로 채워져
1년에 순이익 1억원을 올리는 기업이 57억원을 자체적으로 빌려 전망이 극히 불투명한 ‘남의 사업’에 뛰어든다면? 감히 말하건대 ‘미친 경영’이다. 적어도 ‘주인 있는 기업’이라면 이렇게 과감하기는 힘들다. 그런데 이런 기업이 2009년 10월 현재 현실에 존재한다. 바로 전 국민에게 물을 공급하는 한국수자원공사(수공)이다.
수공은 지난 9월28일 개최한 이사회에서 ‘4대강살리기사업 시행계획안’을 과감하게 통과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참여해 총예산 22조여 원 중 8조원을 자체 조달하기로 한 것이다. 8조원은 2008년 수공 매출액(2조4000억원)의 3.3배, 순이익(1380억원)의 57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수공이 조달하는 8조원 중 정부가 ‘책임’지는 부분은 명확하지 않다. 먼저 이자 등 금융비용(1조5000억원 상당)은 정부가 보전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원금 8조원에 대해서는 4대강 주변의 개발사업권을 수공에 부여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한마디로 수공 자체적으로 개발 사업을 벌여 벌어들인 돈으로 원금을 갚으라는 것이다.
수공은 왜 8조원을 떠맡았나
민간 기업이라면 뛰어들기 힘들다. 금융비용은 해결된다지만 개발사업을 어느 정도 범위까지 보장받을지, 그리고 실제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극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실┠?9월28일 이사회에서 경영진의 답변을 봐도, 아직 ‘수변지역 개발을 위한 마스터플랜’은 정부가 마련 중이고, 그 이후에야 ‘투자비 회수 규모’가 구체화될 전망이다. 비상임 이사 한 명도 “수변지역 개발을 통해 회수해야 할 수익이 확정되지 않았다”라는 점을 알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이사회는 덜컥 수공이 8조원을 떠안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더욱이 수공은 이미 운하 사업에 참여 중이다. 지난해 떠맡은 2조2000억원 규모의 경인운하 사업이 그것이다. 민주당 김성순 의원이 공개한 수공의 재정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정도 부담으로도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어 물 값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에 더해 8조원을 더 떠맡겠다는 것이다. 이런 사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수공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사회는 사업·예산 등 회사의 주요 현안을 결정하는 의결기관이다. 회사 내부인인 경영진(상임이사)과 외부의 사외이사(비상임이사)로 구성된다. 공기업의 경우,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은 사실상 정부(공적 사업)를 대표한다. 그래서 대통령이 사장(기관장)을 임명한다(사장은 부사장 등 다른 경영진을 임명). 이에 대해 비상임 이사의 임무는 이런 경영진을 견제해서 공기업의 자율경영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정부 그리고 이들이 임명한 경영진이 공익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공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비상임이사의 존재 의의가 있다. 그리고 공기업 운영을 규율하는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르면 ‘상임이사의 수는 전체 이사의 2분의 1 미만’이어야 한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임이사(경영진)의 전횡을 막기 위해 비상임 이사들이 수적 우위를 누리게 한 것이다.
이제 수공의 경우를 보자. 2009년 10월 현재, 기관장을 포함한 이사는 모두 13명이다. 비상임이사가 7명으로 상임이사보다 1명 많다. 정부와 경영진의 전횡을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형식적으로는 갖춰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공 비상임이사들의 면모다. 수공의 비상임 이사 중에는 이 부문에서 한국 최고 수준인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학자의 양심과 소신에서 대운하나 4대강 사업을 지지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학자로서의 양심’과 ‘공기업 이사로서의 입장’은 아주 다르다. 공기업 이사로서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가치는 ‘해당 기업의 이익과 지속 가능성, 재무구조의 건전성’이고 이를 위한 경영진(정부) 견제이기 때문이다.
비상임 이사 7명 중 6명이 ‘MB 남자’
먼저 정치인 출신 비상임이사로 양홍규 변호사와 송병대 한나라당 대전광역시당 위원장이 있다. 양홍규 변호사는 대전시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한나라당 대전광역시당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4월 총선 당시에는 대전 유성구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다가 탈락하기도 했다. 이때 유성구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으나 본선에서 낙선한 송병대 위원장(제16대 한나라당 국회의원)도 수공 비상임이사이다.
선임 비상임이사인 김연철 한남대 행정복지 대학원장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이명박 지지 단체의 연합으로 설립된 선진국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대통령직 인수위 당시에는 국방소위 팀장을 지냈다.
김계현 인하대 사회기반시스템공학부 교수는 2007년 하반기 구성된 ‘한나라당 운하정책 환경자문교수단’ 출신이다. 자문교수단의 단장은 ‘대운하 전도사’로 불렸던 이화여대 박석순 교수다. 김계현 교수는 2008년 4월 대운하 학술대회에서 “한반도 대운하는 IT(정보통신기술)를 이용해 내륙의 낙후된 지역에 물류 혁신과 관광 증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진할 만한 과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올해 들어서도 ‘대한민국 정책포털’ 등에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지하는 글을 게재하는 등 오래전부터 대운하와 4대강 사업에 소신과 학식을 가졌던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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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자원공사 국감에서 김건호 사장(왼쪽)과 부사장이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
한국수자원학회 회장 출신인 송재우 홍익대 건설도시공학부 교수는 2006년 말부터 내륙 운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당시는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대비해 ‘내륙운하 프로젝트’의 공론화를 본격화하기 시작할 때다. 송 교수는 2007년 5월 당시 이명박 후보의 정책자문단에 들어갔으며, 장석효 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이 만든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김병진 두원공과대학 총장 역시 한국정책학회 전 회장으로 2007년 7월 당시 이명박 후보 상임특보로 임명된 경력이 있다. 비상임이사 중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대운하와의 관련성을 찾기 힘든 인사는 김학렬 신광에코로드이엔씨 대표이사 정도다.
비상임이사 7명 중 6명이 한나라당 정치인이거나 이명박 대통령의 외곽 정치조직, 자문교수단, 특보 따위 경력을 가진 것이다. 더욱이 한국에서 대운하 문제에 선두를 다툴 전문가가 2명이나 비상임이사진에 포함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학자로서의 양심’과 ‘이사로서의 입장’은 다르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는 4대강살리기사업 마스터플랜을 지난 6월8일 수립해서, 12일에 그 내용을 수공에 통보했다. 수공 이사회는 22일 특별보고를 받는데, 이날은 공교롭게도(?) 비상임이사 중 3명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시사인 [110호] 2009년 10월 27일 (화) 1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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