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88만원 세대를 부러워하는 이들이 있다. 노동 시장에 나온 10대 청소년들인 '44만원' 세대이다. '알바생'라는 이유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것은 예사이고,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퇴직도 못한다는 '노예각서'를 쓰는 일도 다반사이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 시사IN > 은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10대 청소년 알바생, '44만원 세대'의 현실을 연속 보도한다.

"네 월급에서 까도 되겠냐?"
햄버거 빵을 굽는 기계가 고장이 났다. 그러나 까맣게 탄 빵은 '무조건' 아르바이트생 책임이었다. 동미선양(17·여·가명)은 매니저가 윽박지르는 소리에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매니저는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탄 빵을 들고 미선이의 입에 밀어 넣었다. 매니저는 미선이에게 "너처럼 알바(아르바이트)하는 애들 잘 안다. 못 참겠으면 덤벼보라"라고 말했다. 지난 여름 일이다. 탄 빵 값은 월급에서 떼지는 않았지만, 미선이는 "지금도 모욕감을 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유명 패스트 푸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들은 10대 청소년이 대부분이다.

미선이는 지난 7~9월까지 3개월간 홍대 앞 유명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스스로 용돈을 벌어보고 싶었고, 부모가 대주는 여행경비에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미선이가 구한 일자리는 시급 4000원을 주는 패스트푸드점이다. 4000원은 법정 최저임금이다. 미선이는 그나마 최저임금을 받고 있지만, 최저임금 보다 낮은 돈을 받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법정 최저임금도 못받는 44만원 세대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가 지난해 전국 청소년 145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52.3%가 최저임금 미만(2008년 최저임금 3770원)을 받는다고 응답했다. 심지어 시간당 3000원 미만을 받고 있는 청소년도 15.1%나 됐다. 최저임금법을 어긴 고용주들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어있다. 그런데도 고용주들이 '대담하게' 최저임금법을 어기는 것은 청소년들이 법정 최저임금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응답자 37.4%가 최저임금제 자체를 알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뒷짐을 지고 있다.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조사한 청소년 근로 사업장 실태를 보면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은 4%에 그쳤다. 청소년 알바생 상당수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데도 노동부는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44만원' 세대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 가운데 하나가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이다.

미선이는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겼다. 카운터를 보기도 하고, 홀 청소를 담당하는 날도 있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매니저를 제외하고는 미선이와 같은 또래이다. 고등학생이 대부분이다. 매니저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카운터를 볼 때 손님을 웃으면서 대하지 않거나 정해진 인사말을 하지 않으면, 등짝을 때리거나 주먹으로 어깨를 때리는 등 때때로 가벼운 손찌검도 했다. 미선이는 "어리다고 쉽게 다루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임금은 법정최저임금을 보장했지만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경우도 많았다. 근로기준법에는 '15세 이상 18세 미만인 자의 근로시간은 1일에 7시간, 1주일에 40시간을 초과하지 못한다. 다만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따라 1일에 1시간, 1주일에 6시간을 한도로 연장할 수 있다'(69조)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미선이는 7시간을 넘게 일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미선이와 합의도 없었다. 매니저의 일방적인 지시로 초과 근무를 했다.

애초 미선이는 '오전11시부터 오후5시까지 일한다'라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미선이는 계약서를 쓰면서 "6시간 일하면 시급 4000원씩 하루 2만4000원을 벌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후 3시나 4시에 매니저는 퇴근하라고 했다. 미선이는 "멋대로 일찍 끝난 경우도 많고 초과 근무를 한 날도 많았다. 제 시간에 끝난 날이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근로 계약서는 그저 종잇조각일 뿐이었다. 퇴근은 매니저가 '가라'라고 지시해야만 가능했다. 초과근무 시간은 시급으로 쳐 줬지만 미선이는 "친구들과 약속 잡기도 어렵고, 영어학원에 갈 수 없는 날도 있었다. 내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 시사IN 장일호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생에게 허용된 식사 시간은 대부분 30분이다.

일하는 동안 미선이는 4900원 짜리 주니어세트로 식사를 했다. 그녀는 '크루 룸'이라고 불리는 직원 공간에서 대부분 혼자 식사를 했다. 밥 먹는 시간은 30분으로 한정됐다. 그나마도 손님이 많으면 식사 시간도 한없이 미뤄졌다. 미선이는 "지금도 햄버거는 잘 먹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미선이가 한 달 동안 일하고 손에 넣는 돈은 30만~40만원 남짓이 전부였다. 그녀는 좁은 크루 룸 한편에 붙어 있던 < 일하는 중 불편한 일 있으면 연락주세요 > 라는 안내에 자신이 '당한 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일이 커지는 것이 두려웠다. 딸이 당한 일을 뒤늦게 안 부모가 미선이 대신 "더 이상 일할 수 없다"라고 매니저에게 전화를 했다. 지난 9월, 미선이는 3개월간의 짧은 '44만원 세대' 경험을 일단 마감했다.

오늘도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시급 4000원을 받으며 일하는 또 다른 미선이가 패티를 굽고, 감자를 튀기면서 '사회생활'이 무엇인지 가슴에 새기고 있을 것이다. 미선이는 "직접 몸을 써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소중한 경험을 했지만, 예사로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는 현실에 부정적인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장일호 기자 / ilhostyle@sis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