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그대로 돌아가 있었다. 대통령은 진보를 이루는 데 적절한 자리가 아니었던 것은 아닐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6일 출간될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자신의 20년 정치인생을 정리하면서 남기 마지막 술회다. ‘노무현 재단’은 23일 자서전 내용을 공개했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저서와 미발표 원고, 메모, 편지와 구술 기록, 유족·지인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390쪽 분량의 ‘정본 자서전’이다.
고인은 자서전에서 2002년 대선, 대북송금 특검, 검찰개혁 등에 대한 뒷얘기와 심경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먼저 결국 자신의 죽음에까지 이르게 된 검찰개혁 실패에 대한 회한이 아프게 들린다. 노 전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 퇴임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토로했다. 이어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버렸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분당, 호남 지지층과 유리되는 단초였던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선 “김대중 대통령이 나서주시면 ‘통치행위론’을 내세워 검찰 수사를 막았을 것이다. 소통이 잘못됐는지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을) 사전에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고 하셨다. 통치행위론의 논거가 사라져 버렸다”고 해명했다.
2002년 대선 당시 “4대 권력기관과 내각·정부산하단체 절반의 인사권에 대한 구두약속을 하라는 정몽준 후보 측의 요구를 거절했다”는 후보 단일화 비화도 소개됐다. 대통령직에 대해선 “각본에 따라 주어진 배역을 하는 연기자가 된 것 같은 때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임기 내내 곤욕을 치른 설화에 대해선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생긴 언어 습관을 대통령 후보가 되고 나서 고쳤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