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한기정(34)씨는 3일 새벽까지 6·2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틀어놓은 채 잠들지 못했다. 그 시각까지 소수점 차이로 엎치락뒤치락 이어지던 오세훈-한명숙 두 서울시장 후보의 치열한 대결을 한씨는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봤다.

한씨는 “평소 정치에 특별히 관심이 없었고, 선거는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영역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하룻밤을 지샌 뒤 그의 생각은 달라졌다. “안 될 거라던 후보가 출구조사에서 극적인 뒤집기를 하고, 다음날 새벽 다른 후보가 다시 뒤집는 걸 보고, 정말 이런 게 ‘각본 없는 드라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3일 아침 회사에 나간 한씨는 상당수의 동료들이 새벽녘까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았다. 충혈된 눈으로 마치 ‘축구 한-일전’을 되새기듯 관전평이 오갔고, 점심을 먹고 들어온 몇몇은 꾸벅꾸벅 졸았다. 축제 다음날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주요 후보들이 새벽까지 ‘드라마틱한’ 대결을 펼치면서,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대단한 흥행몰이를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비교적 높았던 투표율뿐 아니라 개표 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접전,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이용한 막판 세몰이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이번 선거에선 다른 때와 달리 각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정치 이슈가 많았던 것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내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서유미(36·서울 관악구)씨는 “아이 때문인지 교육감이나 교육의원 선거에 관심이 가서 밤늦도록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번갈아 지켜봤다”며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아이들이 먹는 밥이나 학교 준비물이 달라진다는 생각에 개표방송에 더 몰입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ㅂ고교에 다니는 전아무개(18)군도 새벽 2시30분께까지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다고 했다. 전군은 “반전이 거듭돼 끝이 궁금해서 새벽까지 개표 결과를 봤다”며 “처음 관심을 갖고 본 선거가 이렇게 재밌는 건 줄 몰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