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는 공개적으로 재벌의 순기능을 강조해온 보기 드문 논객이다. 그에게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에 대한 소감을 들어봤다.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했다는데.
당초부터 그가 은퇴했다고는 믿지 않았다. 자기 가족과 인맥이 모두 그룹 내에 포진해 있는데 가장이 물러난다는 것이 가능할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삼성의 위기’가 복귀 명분이다.
통상적 의미로 볼 때 삼성은 위기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새로운 시장이나 산업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 위해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라면 타당한 측면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성공한 경영자인가. 전문경영인이라면 더 잘했을 거란 이야기도 있다.
그가 삼성을 한 계단 도약시킨 것은 맞다. 전문경영인이 더 잘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거야 ‘역사의 가정’인데 누가 알겠나.

ⓒ시사IN 안희태 장하준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

이건희 회장은 이른바 ‘그룹 경영’으로 산하 계열사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쳐왔다.
내가 언제나 이야기해왔던 대로, ‘그룹 경영’은, ‘국민경제에 이로운가, 아닌가’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그룹 전체의 발전을 위해 특정 계열 기업에서 다른 계열사로 돈과 사람을 옮기는 조처는 옳을까, 그를까? (수익성이 좋은 기업의 주주에겐 당장 손해일 수 있지만) 그 기업이 한 계단 업그레이드된다면, 국민경제에도 이롭고, 주주에게도 장기적으로 이익이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주주들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러나 삼성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불법 행위도 서슴지 않고 저질러 왔다.
그렇다. (IMF 사태 이후) 새롭게 도입된 질서 아래서 원래 하던 대로 하려고 편법을 쓴 것이다. (정-관-언 유착 등)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많이 저질렀다. 아쉬운 것은 재벌 경영의 장점을 살리면서 사회적 정의와 조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존경받는 ‘기업 가문’도, 거슬러 올라가면 ‘악당’ 투성이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오늘날 존경받는 것은 (스웨덴인들이) 100년간 족친 결과다.

지주회사 체제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그룹 경영의 장점을 없애도 될 정도로 투명성이 중요한지는 재고해봐야 한다.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주주에게 이로운 체제를 만든다는 것인데, (이와 관련된 사회적 의제가) ‘주주가 많이 먹느냐’ 대 ‘재벌 가문이 많이 먹느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쟁점은 무엇인가.
한국 경제가 적극적 투자를 통해 첨단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업 지배구조, 복지 시스템, 노사관계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이 개정될 예정인데 재벌이 초대형 제조업체와 금융기업을 함께 보유하게 될 전망이다.
이 같은 현상과 관련해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어떤 장기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걱정된다. 혹시 규제 완화를 통해 비교적 손쉽게 떼돈을 벌 수 있는 금융산업이나 키우겠다는 것 아닐까. 첨단산업으로 가는 것이 어렵다고 옆으로 엇나가 금융 같은 서비스업으로 먹고살려고 하면 큰일 난다. 아일랜드나 두바이가 그러다가 실패하지 않았나. 이미 나노테크 같은 부문에서 중국이 한국을 앞질렀다는데 걱정이다.

삼성의 비리에 격분한 시민 중 일부는 ‘삼성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삼성(이라는 대기업 집단)을 재벌 가문으로부터 빼앗아서 해외 자본에 헌납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겨우 빼앗아서 왜 외국에 주나. 차라리 국유화하자고 하는 것이 (현실성이 없을지 몰라도) 훨씬 정당성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