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용으로 머무르는 MB식 자원 외교 코스모스펀드 11-01 18:50
국내 정치용으로 머무르는 MB식 자원 외교 국정감사에서 MB식 자원 외교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MOU 단계에서 성급히 발표했다가 ‘없던 일’이 된 사례도 적지 않고, 자원을 확보한다며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한 사례도 있었다. 원자력발전 다음은 리튬이었다. 8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방한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양국 광물공사가 리튬 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리튬은 휴대전화·노트북·전기자동차 등에 들어가는 차세대 전지의 핵심 소재다. KBS 9시 뉴스는 특집 꼭지까지 편성해 “첨단산업의 핵심 소재, 리튬을 개발할 수 있게 됐습니다”(앵커) “이게 바로 볼리비아 소금 사막의 그 소금입니다. 리튬 함량이 보통 소금의 1만 배가 넘는데요, 가치가 대단한 소금입니다”(기자)라며 열을 올렸고, <조선일보>는 열흘 빠른 8월17일자 1면에 톱기사로 올렸다. 기사 제목은 ‘볼리비아 리튬 개발권 코리아가 먼저 따냈다’였다. 하지만 실상은 얘기가 좀 다르다. 정상회담 직후 체결된 MOU는 양국 광물공사가 맺은 네 번째 MOU다. 2009년 4월, 8월, 10월에다 올해 8월까지 매번 비슷한 내용의 MOU를 체결했다. 지난 8월에는 대통령이 등장한다는 사실만 추가됐을 뿐이지만, 언론의 태도는 180° 달라졌다.     ⓒ청와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왼쪽)이 8월26일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가운데)과 정상회담을 했다. MOU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 묘하다. 언론의 호들갑만 보면 구체적인 숫자와 계약 내용이 잔뜩 들어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허탈한 수준이다. 지난 8월에 체결한 가장 최신 MOU를 보자. 제3조 가항에서 양측은 ‘경제성 분석 등에 대한 협의를 조속한 시일 내에 실시’한다고 적었다. 사업 추진의 기본 중의 기본인 비용·편익 분석조차 하기 전 단계라는 얘기다. 비용·편익 분석 결과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사업 추진은 물 건너간다. 제3조 마항에서는 ‘판매 계약 관련 조건은 향후 협상을 통해 정한다’고 되어 있다. 경제성 평가조차 없는 상황이니 판매 계약은 꺼낼 단계가 아니다. 그래서 이 MOU가 규정한 목적부터 ‘상호 간의 협력 증진’에 그친다. MOU, 법적 구속력 없어 네 차례나 MOU를 맺고, 대통령이 직접 나섰으며, 대다수 언론이 대서특필한 리튬 자원 외교의 현 위치는 ‘출발선에서 반 발짝 전진한 정도’인 셈이다. 마치 우리나라가 리튬을 당장 확보한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나가도 너무 나간 얘기다. 실제로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볼리비아의 경우 리튬 품위(일종의 농도 개념으로 품위가 높을수록 리튬 추출비용이 적게 든다)가 낮고 관련 인프라가 거의 없어 경제성 확보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고 칠레·아르헨티나 등 기존 생산국 시장 개척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MOU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만큼 파기하기도 손쉽다. 외교통상부가 펴낸 <알기 쉬운 조약업무>를 보면 MOU에 대해 ‘국가 간 합의된 일반 원칙이 없고 관행의 불일치가 있을 수 있으므로, 조약을 체결한다면 MOU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다. 이번 리튬 MOU를 봐도 ‘본 양해각서는 제6조(비밀 유지)를 제외하고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명시했다. 애초에 조약이니 계약이니 하는 개념으로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와 한국광물자원공사 등 당사자들은 “자원 외교는 하루아침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 안목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첫발을 뗀 것부터 의미가 있다”라고 반박한다. 맞는 얘기다. 자원 외교는 대체로 한 정권 임기 내에 결판이 나기 힘든 장기 프로젝트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MOU 단계에서부터 대국민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이 오히려 국익을 손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원혜영 의원(민주당)은 “MOU 단계부터 우리가 국내 홍보를 과도하게 하면, 상대 국가의 ‘몸값’이 올라간다. 우리가 더 급한 쪽이 되기 때문이다. 차후 협상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잃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세일즈 외교’가 알고 보니 자원 보유국이 아니라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세일즈’하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그래서 나온다. 정상들끼리 협약한 사업도 슬그머니 취소 자원 외교는 이명박 정부 외교정책의 대표 브랜드다. 이명박 100대 국정과제를 봐도 자원 외교는 외교 분야 첫손에 꼽혔다. 한승수 초대 총리,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 등 이명박 정부를 대표할 만한 중량급 인사들이 하나같이 자원 외교를 본인의 최대 임무라 자임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리튬 MOU 건 같은 ‘무리수’가 곳곳에서 양산되었다. 이번 국정감사 기간에 지식경제위원회 노영민·조정식 의원,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원혜영 의원 등 여러 야당 의원이 자원 외교의 허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리튬 건과 마찬가지로 MOU 단계에서 대국민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가 갖가지 이유로 슬그머니 종료한 사업이 많았다. 총리가 방문했거나 심지어 대통력이 직접 방문해 맺은 MOU들이 연달아 깨져나갔다. MOU 체결 때는 당장 자원 도입이 될 것처럼 요란하게 홍보하다가도 종결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승수 전 총리가 한창 자원 외교를 강조하던 2008년 5월, 우즈베키스탄의 침칼타사이 중석광 개발사업 MOU 체결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바로 1년 뒤인 2009년 5월에는 대통령이 중앙아시아 순방 일정 중 하나로 우즈베키스탄을 찾으면서 ‘한·우즈벡 신실크로드 구축’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총리와 대통령이 연달아 협약을 체결한 이 사업은 지난해 12월 ‘광물 부족’ 판정을 받으며 허무하게 종료되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또 다른 자원 외교 사례로 알마릭 사와 협약한 연아연 광산 개발 건도 마찬가지다. 역시 총리와 대통령이 연이어 직접 관여한 MOU이지만, 마찬가지로 올해 5월 사업이 종료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중앙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카자흐스탄 동광 사업 MOU도 이끌어냈다. 이 사업은 광물 부족 때문도 아니고 상대 업체인 카작무스 사가 자체 개발하겠다고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종결되었다. 이는 MOU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사실과, 대통령 순방의 주요 성과로 홍보했던 자원 외교가 얼마나 취약한 수준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장면도 있다. 정부는 한 전 총리가 2008년 5월 카자흐스탄 잠빌 해상광구 지분 27%를 8500만 달러(약 935억원)에 인수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점에서 싼값에 석유 자원을 확보한 ‘기적 같은 일’이라는 자화자찬이 잇따랐다. 하지만 지난해 7월 감사원의 석유공사 감사결과 각종 이면계약 등을 통해 우리가 지불한 돈이 최소 11억7000만 달러(약 1조2800억원)나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초 발표 금액의 13배나 된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자원 외교로 많은 자원을 확보했다고 하지만, 협약 등 체결 이후를 되짚어본 결과 실패한 외교이며 국민을 현혹시키는 포퓰리즘적 행태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원 외교’가 치밀하고 장기적인 대외 전략이 아니라 국내 정치용에 머무르는 한, MOU 체결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가 본협상에서 주도권을 잃거나 아예 없던 일이 되어버리는 패턴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